철창 안에서도 돈이 계급을 결정한다는 이야기였다.
◇“돈이 있으면 콘도 같은 방에서 산다”
필리핀에서 22년째 거주한 교민 A씨는 외국인 수용시설의 내부 사정을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설 안에는 일반 수용공간과 분위기가 전혀 다른 별도의 숙소가 존재했다. 숲이나 나무로 둘러싸인 구역에 콘도처럼 꾸며진 방이 있고, 큰돈을 지불할 수 있는 일부 수용자가 이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일반 수용자들과 똑같이 생활합니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은 별도의 방을 사용하면서 훨씬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담장 안이지만 생활은 완전히 다른 셈이지요.”
현지에서는 이 같은 숙소를 이용하기 위해 매월 1000만원 안팎 또는 그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돌았다.
정확한 금액과 운영 방식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교민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돈 많은 외국인 수용자들은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A씨는 특정 시간에 인원 점검을 받는 것 외에는 휴식과 취침도 비교적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점만 빼면 웬만한 숙박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도 있습니다. 돈의 힘이 감옥 안에서까지 통하는 것이지요.”
◇고기와 술이 들어오는 주말 파티
더 충격적인 내용은 주말에 벌어지는 파티였다.
A씨의 증언에 따르면 경제력이 있는 일부 수용자는 외부에 연락해 소고기와 돼지고기, 해산물 등을 주문했다. 술과 담배도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 수용자에게 공급되는 식재료와 부식은 정해진 통로로 들어오지만, 특별숙소에서 사용할 고급 식재료와 물품은 별도의 경로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주말이면 좋은 부위의 고기와 해산물, 술과 담배를 주문한다고 합니다. 네댓 명이 모여 파티를 하는데 하룻밤에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부 교민은 돈을 주고 외부 여성까지 출입시킨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다만 여성 출입과 관련된 내용은 시설 당국의 공식 확인이 없는 만큼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같은 소문이 지속해서 나오는 배경에는 필리핀 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와 금전 거래 관행이 있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시각이다.
A씨는 “일반 사회에서도 돈이면 안 되는 일이 드문데, 관리와 감시가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수용시설은 외부에서 실태를 확인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철창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 도박
외국인 수용시설에서 가장 요지경 같은 대목은 도박이다.
범죄 혐의로 붙잡혀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 수용시설 안에서도 돈을 걸고 카드와 구슬 도박을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가벼운 놀이로 시작한다. 담배나 음식을 걸고 승부를 벌이다가 점차 현금이 오가는 도박으로 변한다.
판돈이 커지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도 등장한다.
카지노 주변에서 도박자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를 흔히 ‘꽁지’라고 부른다. 교민 증언에 따르면 외국인 수용시설 안에도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돈을 잃은 수용자가 다시 도박하기 위해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면 가족이나 외부 지인에게 연락해 송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수용시설 안에서는 신용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돈을 빌려 도박하고 약속한 날짜에 갚지 못하면 폭행이나 협박을 당할 수 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바깥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일이 담장 안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셈입니다.”
도박으로 체포된 사람이 수용시설에서도 도박을 하고, 돈을 모두 잃은 사람이 다시 사채를 쓰는 기막힌 악순환이다.
장소만 교도시설로 바뀌었을 뿐 카지노 주변의 사채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아프다는 이유로 허용되는 특별한 외출
돈의 힘은 담장 밖으로도 이어진다는 증언이 나왔다.
A씨는 질병 치료를 이유로 일부 수용자의 외부 진료가 허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돈을 이용한 특혜성 외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현지에서 돌았다고 전했다.
외출할 때는 무장한 교도관이나 보안요원이 동행하고 대부분 당일 시설로 복귀한다.
정상적인 외부 진료는 수용자의 기본적인 의료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 아픈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진료를 명분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주장이다.
“큰돈을 건네면 아프다는 이유를 만들어 외부 병원에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교도관이 총을 가지고 동행하지만, 수용시설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일반 수용자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특혜입니다.”
이 역시 당국의 공식 조사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돈에 따라 숙소와 음식, 생활 편의는 물론 외출 기회까지 달라진다는 현지 증언은 필리핀 사법·교정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