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ournal

요지경카지노·26. 09. 10.

총알을 피하고 납치에서 살아남은 ‘마닐라 밤의 황제’

홍춘봉편집국 기자·기자

필리핀 클락의 카지노

― 카지노홍의 ‘요지경 카지노’ ―

 

필리핀 마닐라의 밤이 깊어지면 화려한 조명 아래 두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밤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과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다.

 

한국인 사업가 남원무씨도 한때 마닐라의 밤을 지배한 인물이었다. 신변 보호를 위해 이름과 일부 정황을 바꾼 그는 올해 77세다.

 

서울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했던 남씨는 약 25년 전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마닐라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5층짜리 건물을 신축하고 대형 나이트클럽을 열었다.

 

필리핀의 나이트클럽은 한국과 분위기가 다르다. 술과 춤이 중심인 대형 유흥업소라기보다 차와 맥주를 마시며 DJ가 들려주는 음악을 즐기는 카페형 업소에 가깝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좋은 입지만 확보하면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었다.

 

남씨의 업소는 문을 열자마자 손님들로 붐볐다. 인근 경쟁업소보다 규모가 5배 이상 컸고 시설과 음악도 앞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닐라 최고의 나이트클럽’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손님과 돈이 한곳으로 몰리자 주변 업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남 사장, 혼자만 돈 벌지 말고 우리도 먹고살게 규모를 좀 줄여주시오.”

 

처음에는 부탁이었다. 곧 경고가 됐고, 마침내 협박으로 변했다.

 

남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렵게 일군 사업을 경쟁업자들의 요구 때문에 줄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닐라에서 성공한 외국인 사업가는 축하보다 질투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어느 날 남씨가 업소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수상한 남성이 다가와 총을 꺼냈다. 총구를 본 남씨가 몸을 돌려 달아나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총알은 오른쪽 발목을 관통했다.

 

남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지만 목숨은 건졌다. 현지에서 카지노 정킷사업을 하던 이모씨는 당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남 사장을 노린 사람은 전문 킬러가 아니라 적은 돈을 받고 움직인 아마추어였다고 들었습니다. 전문 청부업자였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겁니다. 발목 부상으로 끝난 것은 정말 천운이었지요.”

 

이 증언은 현지 취재원에게 들은 내용으로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씨가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주변 교민사회에 널리 알려졌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남씨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업은 계속 번창했고 돈도 쌓였다. 남씨는 당시 필리핀에서 보기 드문 최고급 포르쉐를 타고 다녔다. 부유층이 모여 사는 고급 주거지역에 살면서 화려한 성공을 감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또 다른 범죄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던 남씨는 어느 날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눈이 가려지고 두 손은 등 뒤로 묶였다. 차량은 마닐라 외곽의 인적 드문 산속으로 향했다.

 

납치범들은 몸값으로 1억원을 요구했다. 오랜 협상 끝에 금액은 5000만원으로 낮아졌다. 지인들을 통해 돈이 전달된 뒤에야 남씨는 가까스로 풀려났다.

 

그를 돌려보내며 납치범 중 한 사람이 뜻밖의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남 사장, 당신이 왜 납치됐는지 압니까? 그렇게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 누가 그냥 놔두겠습니까?”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충고까지 한 기막힌 상황이었다.

 

남씨는 풀려나자마자 포르쉐를 처분했다. 이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일본산 승용차를 탔다. 이동할 때는 보디가드도 대동했다.

 

총격과 납치에서 살아남은 남씨에게도 피하지 못한 상대가 있었다.

 

카지노였다.

 

은퇴비자를 받아 마닐라에 정착한 남씨는 카지노 게임을 무척 좋아했다. 사업을 마치면 카지노로 향했고, 바카라 테이블 앞에서 밤을 보내는 날이 늘어났다.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약 15년 동안 마닐라 카지노에서 200억원가량을 잃었다고 한다. 정확한 카지노 거래기록이 공개된 것은 아니므로 추정치지만, 막대한 돈을 잃었다는 사실만큼은 여러 취재원의 증언이 일치했다.

 

일반인이라면 몇 번의 큰 손실만으로 삶이 무너졌을 것이다. 남씨는 달랐다. 나이트클럽 사업으로 축적한 재산이 상당했고 한 번에 모든 돈을 거는 식의 극단적인 베팅은 피했다. 200억원을 잃고도 여전히 상당한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지 경찰과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과도 폭넓게 교류했다. 선거철이면 지역사회 행사와 정치권에 적지 않은 돈을 후원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다만 구체적인 후원 규모와 방식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 남씨가 지난해 6월부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카지노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돈을 쓰며 게임을 즐기는 고액 고객이었다면, 이제는 매일 일정한 목표를 세우고 출근하는 ‘직업형 겜블러’를 자처했다.

 

남씨가 준비하는 게임머니는 약 1억5000만원. 하루 목표 수익은 500만원이었다.

 

바카라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한참 동안 게임을 지켜본 뒤 자신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순간 500만원을 베팅한다. 첫판을 맞히면 더 욕심내지 않고 칩을 현금으로 바꿔 카지노를 떠난다.

 

문제는 첫 베팅에서 졌을 때다.

 

500만원을 잃으면 다음 판에 1000만원, 다시 지면 2000만원, 또 지면 4000만원을 베팅한다. 패할 때마다 금액을 두 배로 올려 한 번만 이기면 앞선 손실을 만회하고 최초 목표액을 얻는 전형적인 마틴게일 방식이다.

 

측근인 이씨는 남씨의 변화를 이렇게 평가했다.

 

“200억원을 잃은 뒤 바카라를 정말 많이 연구했습니다. 요즘은 하루 500만원만 따면 미련 없이 일어납니다. 6개월 넘게 목표를 이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이트클럽보다 카지노에서 버는 돈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 남씨가 카지노를 이기는 전문 겜블러가 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카지노 측의 공식 손익자료가 확인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성공한 날은 기억해도 실패와 누적 손실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무엇보다 마틴게일은 승리전략이 아니다.

 

500만원에서 시작해 연속으로 패하면 베팅액은 1000만원, 2000만원, 4000만원, 8000만원으로 급증한다. 다섯 번 연속 패하면 누적 손실은 1억5500만원에 달한다. 남씨가 준비한다는 게임머니 1억5000만원을 넘어선다.

 

수십 번 작은 승리를 쌓아도 단 한 번의 긴 연패가 그동안의 수익을 모두 지울 수 있다. 카지노의 테이블 한도와 개인의 자금에는 끝이 있지만 연패 가능성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남씨는 오늘도 마닐라의 카지노를 찾는다고 한다.

 

판을 살피고, 흐름을 읽고,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린다. 첫 베팅에서 이긴 날에는 500만원을 챙겨 미련 없이 문을 나선다.

 

그 모습만 보면 카지노를 정복한 노련한 승부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가방 속 1억5000만원은 하루 목표인 500만원을 벌기 위한 자금인 동시에, 한 번의 연패 앞에서 사라질 수 있는 위험자금이다.

 

총구 앞에서 몸을 돌려 목숨을 건졌고, 납치범에게 몸값을 주고 산속에서 살아 돌아온 남씨. 그는 사업에서도 성공했고 필리핀의 거친 밤거리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제 77세의 남씨가 맞서는 마지막 상대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도, 자비도, 기억도 없는 카지노의 확률이다.

 

마닐라 밤의 황제는 총알과 납치범을 피했다. 하지만 카지노의 수학까지 피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6개월 동안 매일 이겼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 해도 카지노의 시간은 6개월에서 끝나지 않는다.

 

카지노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계속 잃을 때만이 아니다.

 

자신이 마침내 이기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믿는 순간이다.

(※ 이 글은 필자의 필리핀 현지 취재와 복수의 교민·카지노 관계자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논픽션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이며 신변 보호를 위해 일부 지역과 세부 정황을 변경했다. 총손실액과 사건 경위, 정치권 후원 및 최근 카지노 수익에 관한 내용은 취재원 진술로, 공식 기록을 통해 모두 확인된 것은 아니다.편집자 주)

 

 

자주 묻는 질문

필리핀 카지노에서 활동하는 남원무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남원무씨는 25년 전 필리핀으로 건너가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큰 성공을 거둔 77세의 한국인 사업가입니다. 그는 마닐라의 밤 문화를 주도하며 부를 쌓았으나, 그 과정에서 경쟁자의 총격과 납치 사건을 겪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으며 현재는 카지노에서 매일 정해진 수익을 목표로 게임을 즐기는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원무씨가 카지노에서 사용하는 '마틴게일 방식'이란 무엇인가요?+

마틴게일 방식은 게임에서 패배할 때마다 다음 베팅 금액을 이전보다 두 배로 늘려, 단 한 번의 승리로 앞선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 최초 목표 수익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남씨는 500만원의 목표 수익을 위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나, 연속 패배 시 베팅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자산 전체를 잃을 위험이 매우 큰 전략이기도 합니다.

과거 나이트클럽 사업가였던 남씨가 카지노에서 겪은 경제적 변화는 어떠한가요?+

남씨는 지난 15년간 필리핀 카지노에서 약 200억 원가량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과거에는 고액 베팅을 즐기는 고객이었으나, 최근 6개월 동안은 철저히 계산된 목표액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즉시 자리를 뜨는 '직업형 겜블러'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카지노의 확률적 특성상 단 한 번의 연패로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기자 소개

홍춘봉기자

카지노 이슈와 산업 전반을 취재하는 K-Journal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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